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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서원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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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서원 소개

창동서원
전통적인 안전한 한국적인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78호로 지정되었다. 1965년 이곳 유림들의 발의로 창건, 김택술(金澤述:1884∼1954)을 배향했다. 건물은 사우(祠宇)·강당· 고직사(庫直舍)·내삼문·외삼문 등이 있다. 《후창집(後滄集)》을 비롯한 많은 책이 보관되어 있다. 김택술의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종현(鍾賢), 호는 후창(後滄)이다. 17세 때 천안 금곡에 있는 전우(田愚)를 찾아가 수학하여 후창이란 호를 받았다. 1906년 최익현(崔益絃)의 태인(泰仁) 창의(倡義)에 참가했으며, 송병선(宋秉璿)·김복한(金福漢)과도 사귀었다. 1909년 치환으로 열지(裂指: 손가락을 찢어 환자에게 피를 먹이는 것)했고 어머니가 죽자 3년 동안 시묘(侍墓)살이를 하여 효로서 이름을 알렸다. 이평면 불망실(不忘室)에서 후진을 교육하며 철저한 배일사상을 고취하여 항거했고 1954년 사론(士論)으로 계양사에 추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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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서원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김제 가볼만한곳, 송참봉조선동네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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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구읍성

정읍시는 갑오동학혁명의 시발지이자 주요 무대로 덕천면의 황토현 전적지를 중심으로 고부 관아터, 만석보터, 말목장터, 전봉준장군고택 등 많은 관련 유적이 있다. 높이 132m의 성황산(城隍山)에 쌓여진 고부의 옛 읍성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이다. 성 안에서 발견되는 각종 그릇과 기와조각으로 미루어 보아서는 삼국시대 백제가 이미 성을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 초기의 기록에 이미 둘레 460보(步)의 돌로 쌓은 읍성이 있었다 하였으며, 문종실록에 의하면 문종 원년(1451)경에 더욱 넓혀 쌓아 둘레 1,803척(尺) 높이 9척이었고, 성벽 위에 높이 3척의 여장(女墻)을 더 쌓았으며 2개의 문이 있었으나, 옹성(擁城)과 적대(敵臺)는 없었다고 하였다. 성 안에 우물 4개와 하나의 작은 연못이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규모가 더욱 큰 읍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성터는 동서방향으로 길쭉한 타원형이며 둘레는 1,050m에 이른다. 성 안에 객사(客舍)터를 비롯한 건물터가 있다. 성벽은 거의 허물어져 원형을 알기 어려우나, 북쪽에 돌로 쌓았던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고 흙으로 묻힌 성벽의 아랫부분은 마치 흙더미가 이어진 듯 완만한 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인 안전한 한국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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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

아름다운 내장산국립공원의 품안에 안겨 있는 내장사는 백제 무왕37년(636년)에 영은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한때는 50여동의 대가람이 들어섰던 때도 있었지만, 정유재란과 6.25때 모두 소실되고 지금의 절은 대부분 그 후에 중건된 것이다.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절이다. 내장산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가운데에 자리잡아 주변경치가 매우 아름다우며, 특히 가을철 단풍이 들 무렵의 절 주변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백양사, 방장산, 장성호, 담양호 등이 주변에 있고 주요문화재로는 내장사 이조등종이 보존되어 있다.[내장사조선동종]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1974년 09월 27일 지정)내장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동종으로 고려 후기 동종에서 보이는 일반적 양식을 갖추고 있다. 내장사가 중건된 후 전라남도 보림사(寶林寺)에서 옮겨온 것이다. 일제 말기에는 놋쇠 공출을 피하여 원적암(圓寂庵)에 감추었고, 한국전쟁 중에는 정읍시내 포교당에 피난시켜 보전을 꾀하였다. 높이 80㎝, 종신길이 60㎝, 구경 50㎝의 소형이나 명문(銘文)이 확실한 조선 후기 범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전북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 모양은 마치 김치독을 엎어놓은 것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배부분[鐘腹]과 견대(肩帶), 구연대(口緣帶)도 확연하며, 문양대에도 4개의 유곽(乳廓)을 배치하였다.* 배부분에 비천상(飛天像) 대신 보살상을 양각 *종정(鐘頂)에는 네 발로 천판(天板)을 딛고 용틀임하듯 구부린 용으로 용뉴를 만든 것이나 그 옆으로 음관을 낸 것도 격식대로이다. 다만 배부분에 비천상(飛天像) 대신 보살상을 양각한 것이 다를 뿐이다. 견대(肩帶)는 두 줄의 띠로 구분하여, 윗띠에는 당초문(唐草紋)을, 아랫띠에는 윗띠의 돌출 부분을 따라 여의두문(如意頭紋)을 배열하였다. 견대 밑에는 24개의 작은 원 문양을 돌리고, 그 안에 범자(梵字)를 양각하였다.* 영조4년에 주조된 동종 *유곽은 각각 당초문을 새긴 사각 띠로 둘러싸고, 그 안에 3단 3열의 종유(鐘乳)가 정연히 배열되어 있다. 각 종유 주위는 둥근 연화문(蓮花文)이 받치고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2구의 보살입상을 배치하고, 그 아래 둥근 모양의 꽃무늬 당좌(撞座)가 2개 있다. 당좌 사이에 "乾隆三十三年戊子十月施主趙漢寶全南長興步林寺鑄成(건륭33년 무자10월 시주조한보 전남장흥보림사주성) 云云"하는 종기(鍾記)가 있다. 조한보가 부친의 복을 빌기 위하여 조성하였다는 내용이다. 건륭 33년은 조선 영조 4년(1768)으로, 이 종이 주조된 해를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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