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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龍華寺)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뽀얀 먼지를 휘날리며 수많은 왜적들이 진천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적들의 눈에 엄청나게 큰 장수같이 보이는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란 왜적들은 순간 갈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큰 장수가 달려와서 칼을 휘두른다면 진영은 풍비박산이 날게 뻔했기 때문이다. 큰 장수와 싸움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심하던 왜장은 마침내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수많은 왜적들은 혼비백산하여 물러가고 말았다.이 이야기는 용화사 석불입상에 얽힌 전설로 진천의 옛 읍지인『상산지(常山誌)』 고적(古蹟)조에 전하는 것이다. 전국토가 왜적의 총칼에 의해 초토화되고 있을 때 왜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여 진천을 지켜내었다는 석불입상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진천의 수호신으로까지 불리어지고 있다. 진천의 수호신이 머무르는 이 용화사는 안타깝게도 언제 누가 창건했고, 원래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또한 언제 폐사가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예전의 역사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용화사 경내에 우뚝 서 있는 석불입상은 왜적을 물리쳐 진천의 수호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러한 전설은 사람들에게 면면히 전해져 공양을 올리게 했고, 마침내 1946년 용화사라는 이름의 사찰이 창건되기에 이른 것이다.[진천용화사 석조보살입상] 유형문화재 제138호(1984년 12월 31일 지정)이 미륵불은 화강암으로 된 불상으로 높이는 7.05m, 아래 부분의 폭이 1.7m나 된다. 불상의 목 부분에는 영락줄이 있으며 손에는 연꽃을 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불상은 김유신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송덕불상이라 불리워지는데 고려시대에도 신라의 예를 따라 길상사의 제향을 국제로 하려면 표적이 있어야 하겠기에 고려 초기에 이불상을 건립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 불상이 있는 사찰은 신라 성덕왕 19년(702)에 창건되어 고려 말에 폐사되었으며 그 후지금의 용화사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불상은 진천읍의 수호신이라고도 하는데, 상산지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불상 맞은편인 삼덕리에 진용을 갖추고 진천읍으로침입하다가 키가 10여척이나 되는 대장이 우뚝 서 있어, 그 위풍에 놀라 싸울 뜻을 잃고물러나 진천읍은 그 화를 면했다고 한다.* 시대 - 고려시대 * 재질 - 석조 (화강암)* 규모 - 높이 7.05m , 폭 1.7m
더보기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인천용화사, 통영 용화사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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