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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는 서쪽에 위치한 해발 92.8m의 薇陽山을 主山으로 삼아 동남향을 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절의 이름에서 보이듯이 용화세계(龍華世界)를 주관하는 미륵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사찰로 이곳의 땅 속에서 솟아난 미륵불이라고 여겨지는 석조여래 입상을 모시고 있다. 나지막하고 완만한 경사를 이룬 산 사이로 좁은 들이 펼쳐지는 이곳의 지형 특성에 따라 배치된 용화사는 산사(山寺)라기보다는 한적한 시골마을의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절의 창건은 1902년 지소현(池素玄) 스님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그 인연에는 스님의 꿈과 연관된 일화가 있다. 불학(佛學)을 공부하고 포교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스님은 그 첫날밤에 종산(宗山)에서 용이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용은 하늘로 오르면서 무슨 미련이 있는지 자꾸 자신이 솟아오른 땅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꿈속에서 보았던 터전에 지금의 용화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또 이곳에서는 미륵 두 분이 솟아났다고 한다. 용화전(龍華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39.6m²(12평)짜리 팔작 지붕으로 법당 내 오른쪽에 석조여래입상과 작은 바위가 세워져 있는데, 이 불상과 바위에 관해서는 남녀 미륵불이 땅 속에서 솟아날 때, 지나가는 행인이 여미륵 위에 소변을 누는 바람에 미륵불이 못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 임신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처로 활용하고 있다.현재 용화사에 전하고 있는 석조여래입상과 그 옆에 모셔진 자연석 형태의 바위가 그것으로 이곳에서는 남미륵과 여미륵으로 칭하고 있다. 이것은 용화사라는 절 이름과 연관된 전설로 이곳이 미륵도량임을 역설하고 있다. 절의 역사가 짧고 터전도 좁아 용화사는 규모가 아주 작으며, 건물의 수도 적다. 1990년대 초반에 지어진 법당이 있었으나 2004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되고 말았다. 현재는 옛 법당 뒤 한 단 높은 대지 위에 임시로 법당을 지어 香火를 잇고 있다. 이밖에 용화사에는 불보살을 모신 전각은 없고 요사 몇 채가 있을 뿐이다. 지정문화재로는 용화사석조여래입상(향토유적 제45호)이 있다.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불상 제45호(2002.10.10 지정) 석조여래입상은 백색 수성페인트로 전체를 칠하고, 이목구비는 흑색으로 칠해 있으며, 지상에 보이는 석불의 총높이는 260cm이고, 머리부분 높이는 70cm이며, 머리부분 폭은 30cm이고, 어깨부분 폭은 90cm이며, 석불의 형상은 머리에 높은 원통형의 정상계주(頂上繫柱)와 이마에 타원형의 중앙계주(中央繫柱)를 가지고, 두툼한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으며, 기다란 얼굴에 지그시 감은 눈, 이마 중앙에 백호(白蒿), 삼각형의 오똑한 코와 굳게 다문 입술은 긴 편이며, 입술과 턱 사이에 수염을 그려 놓았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으며, 통견의 법의는 양어깨와 팔에 감싸 있고, 가슴은 사선으로 속옷이 보이며, 왼손은 옷자락을 살짝 잡고, 오른손은 앞으로 내밀어 손바닥을 위로 한 자세를 하고 있어, 조선후기에 유행한 미륵불의 영향을 받아 용화사 창건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무릎 이하가 땅에 매몰되어 있어 실제의 전체높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법당이 3단의 축대 위에 서 있기 때문에 대략 3m 이상의 크기로 추정된다.
더보기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인천용화사, 통영 용화사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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