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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성룡 선생이 학문을 위해 지은 정사, 안동 하회마을 옥연정사(玉淵精舍) *안동 하회마을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1542~1607)이 평소 가깝게 지내던 탄홍(誕弘)의 도움을 받아 지은 것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곳이다. 서애 선생은 원지정사를 지은 뒤에 마을이 가까워서 번거롭고 그윽한 분위기를 누리지 못하여 강 건너 부용대 기슭에 터를 잡아 놓았으나 가세가 빈한하여 정사를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던 것을 탄홍(誕弘) 스님이 그 뜻을 알고 건축을 맡고 재력을 부담하겠다고 자원하여 1576(선조9년)에 착공하여 10년만인 서애선생 45세 때인 1586(선조19년)에 겨우 완공하였다. 선생은 그 후 부용대 서쪽 기슭에 있는 형(겸암선생)의 정사인 겸암정사를 부용대 층길을 이용하여 오가며 형제 사이의 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1605년(선조38년) 낙동강 대홍수로 하회의 삼칸초옥을 잃고 이곳에 은거하며 임진난을 회고하여 징비록(국보 132호)을 서술하셨다.* 안동 하회마을 옥연정사의 두 건물, 세심재와 원락재 *세심재는 감록헌 마루를 가운데로 두고 좌우 방 1칸이 있으며 서애선생께서 서당으로 쓰신 곳이다. 서당채 주역계사편 중 의혹종사어사 이서기만일이(意或從事於斯 以庶幾萬一爾) ; 여기에 마음을 두어 만에 하나라도 이루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루 감록헌은 왕희지의 '우러러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아래론 푸른물 구비 바라보네'라는 시어에서 따온 것이다.원락재는 서애선생께서 이 방에 기거를 하시며 징비록을 서술한 곳이다. 친구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원락재라 하였는데, 이 명칭은 논어 중 '이른바 먼 곳으로부터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아라는 뜻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2칸 마루 애오헌은 도연명의 시에 '吾亦愛吾廬(오역애오려), 나 또한 내 오두막집을 사랑하노라' 한 시어에서 따온 것이다.
더보기이곳은 40대, 3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1박2일안동여행, 안동찜닭 맛집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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