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의 인공지능이 분석한 부여 능산리 고분군 여행의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숙소들을 알아보세요.
* 백제 시대의 무덤의 집합체, 백제왕릉원 (능산리고분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때의 무덤들로 고분군은 해발 121m의 능산리 산의 남사면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고분군이 위치한 자리는 이른바, 풍수지리사상에 의해 점지(占地)된 전형적인 묘지로서의 지형을 갖추었다. 뒷산을 주산으로 하고, 동쪽에 청룡, 서쪽에 백호, 앞산인 염창리 산을 남쪽의 주작으로 삼았고, 묘지의 전방 약 200m거리에 능산리 천이 서류하는 남향의 왕실의 공동묘지이다. 고분은 전열 3기 후열 3기, 그리고 맨 뒤 제일 높은 곳에서 1기가 더 발견되어, 지금은 모두 7기로 이루어진 고분군이다. 고분의 분구는 모두 원형봉토분이며 크기는 대형,중형,소형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대형인 전열의 3기는 분구의 직경이 약 25~30m이고, 중형인 후열의 분구는 직경이 약 20~25m이며, 최후의 1기는 분구의 직경이 20m 내외이다. 1호분인 동하총은 장방형현실(玄室)과 연도(羨道)로 이루어진 단실묘(單室墓)이다. 현실과 길이 연도는 사면벽을 화강암과 편마암(片麻巖)의 거대한 1매 판석을 사용하였다. 석실 바닥의 중앙부에 모전석(模塼石)을 사용하여 길이 238cm, 너비 125cm, 높이 17.5cm 규모의 관대(棺臺)를 만들었는데, 상면을 들고 내부를 보면 당초에는 1인용 관대였으나 뒤에 양측으로 확장하여 2인용 관대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2호분인 중하총은 장방형의 석실과 비교적 긴 연도로 이루어진 단실묘이다. 천정형식은 터널형이며 벽체는 긴 장대석으로 축조하였다. 마치 송산리 6호분과 무령왕릉의 형식을 재료만 벽돌에서 장대석으로 바꾸어 놓은 형식이다. 석실전장은 672cm이고, 현실 길이 349cm, 너비 215.1cm, 벽고 130.4cm, 천정고 234.3cm이며 연도 길이 290cm, 너비 112.2㎝, 천정고 126.1cm이다. 3호분인 서하총은 장방형 석실과 비교적 짧은 연도로 이루어진 단실묘이다. 천정의 형식은 평사천정이며, 벽체는 거대한 판석 1매로 구성하였다. 이 형식은 7세기경 부여지방에서 크게 유행하여 주류를 이루었다. 석실전장은 471.6cm이고, 현실 길이 314cm, 너비 136cm, 벽고 131cm, 천정고 165cm이며, 연도 길이 131cm, 너비 122cm, 천정고 131cm이다. 4호분인 서상총, 5호분인 중상총, 6호분인 동상총 등은 판석조의 단실묘이며, 천정 형식은 평사천정으로 이루어졌다. 7호분은 장방형석실과 짧은 연도로 된 단실묘이며, 벽체와 천정은 각면 4매의 판석으로 조립하였다. 석실전장은 355cm이고 현실 길이 139cm, 너비 62.5cm, 벽고 100cm, 천장고 145cm이며, 연도 길이 55cm, 너비 90cm, 천장고 100cm이다. * 알면 재미있는 능산리고분군의 조성 시기 *능산리고분군은 연대순으로 보면 중하총, 동하총, 서하총 순으로 축조되었다. 중하총을 제일 이른 시기로 보는 이유는 터널형식은 공주 송산리의 무령왕릉과 6호분의 형식과 같고, 단지 재료만 전에서 돌로 대치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분 주인공의 추정은 중하총은 웅진에서 즉위하여 사비에서 사망한 성왕의 능으로 추정하고, 다음 동하총은 성왕의 아들인 위덕왕으로 추정하며, 서하총 이하 평사천정형식은 사비시대 중기 이후에 유행한 형식이므로 각각 시기에 맞는 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고분군의 서쪽 200m 거리에서 능사(陵寺)(원찰(願刹))터가 발굴되었고 그곳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의 출토는 능산리 고분군이 왕실묘지라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더보기이곳은 20대, 1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부여 정림사지, 성흥산성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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