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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도립공원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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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도립공원 소개

대둔산도립공원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대둔산은 동국여지승람에 씌어있는 바와 같이 진산(珍山)의 진산(鎭山)이며 금산 땅이니 금산의 산이라 할수 있다. 속리산 법주사 하듯, 대둔산을 주산으로 하는 옛절 태고사도 금산 땅에 있다. 비록 대둔산 전체에서 금산이 차지하는 지역의 비중이 작지만 분명 대둔산의 뿌리는 만해 한용운이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명승지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태고사 자리가 대둔산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대둔산 하면 금산의 산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완주군 쪽을 크게 개발하고 사람들을 끌어 들이면서 전북 또는 완주의 대둔산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금산의 대둔산으로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금산ㆍ완주의 대둔산’이라는 공동명의의 산으로 인식을 바꾸어 놓았으면 한다. 두개의 도립공원으로 되어 있는 산이다. 군 행정구역으로 볼 때 전북쪽은 완주군 하나의 군구역으로 되어 있으나 , 충남쪽은 금산군과 논산시 두 군의 구역으로 되어 있다. 대둔산은 기암괴봉들이 많고 그 바위 봉우리들이 수려하며 깨끗하다. 크지 않으나, 장한 맛도 있고 아기자기한 맛도 있다. 한 쪽은 숲도 울창하며 계곡도 아름답다. 가을에 단풍이 기암괴봉과 어우러질때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또 임진왜란의 전적지이기도 하고, 천하의 대지에 자리잡고 있는 태고사 절 앞의 암벽에 새겨진 ‘석문(石門)’이란 글은 우암 송시열이 쓴 글자로 알려져 있으며 갖가지 전설도 서려 있다. 경관이 수려하고 여러가지로 훌륭한 대둔산은 금산, 논산, 완주 세군이 차지하고 있는 각 지역마다 각각 특색이 있어 재미있다.금산은 임진왜란 전적지와 천하명당인 태고사가 있고, 논산지역은 숲이 좋고 계곡과 개울이 좋으며 완주지역은 기암괴봉이 수풀처럼 서 있고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있다. 산길도 진산면 향정에서 오르거나 배티재에서 산비탈을 엇비슷이 가로질러 오르다 태고사에 들른 뒤 낙조대에 오르는 길이 좋다. 논산쪽은 수락리에서 승전탑을 거쳐 수락계곡의 화랑, 금강, 비선 폭포를 보며 196계단을 타고 고스락('정상'을 뜻하는 순우리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좋고, 완주쪽은 집단 시설지구에서 올라 구름다리 금강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좋다. 안심사에서 깔딱재를 넘어 오르는 길도 있다. 원효대사가 사흘을 둘러 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격찬한 대둔산은 정녕 아름다운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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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도립공원 특징

이곳은 30대, 4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충남대둔산도립공원, 대둔산도립공원야영장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문 연령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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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선생비

임진왜란 때 금산에 주둔한 왜적을 유인하여 금성면 파초리 눈벌싸움에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제봉 고경명 선생의 순절비이다. 전라도 출신의 의병장인 고경명의 순절비가 여기에 세워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본래 고경명선생은 고향인 장흥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더욱이 임금인 선조가 파천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격분함을 참지 못한 선생은, 큰 아들 종후와 여주인 김천일, 담양부학유 유팽노 등을 찾아 상의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금산의 왜적을 향하여 적정을 수색하는 한편, 충청 의병장 조헌에게 서신을 보내서 같이 평강을 건너 금산의 왜적을 칠 것을 약속하였다.이 때 진산에 이르자, 왜병이 전주로 진군하려고 진산에 오는것을 맞아 접전 끝에 왜적을 물리쳤다. 이에 왜군은 서서히 후퇴하여 금산성으로 돌아가 수세를 취하였다. 임진년 7월 9일 새벽에 작전계획을 세우고 곽영의 군은 북문을 담당하여 공격하고 고경명 군은 서문을 담당하여 공격하였다. 북문에서 승리한 왜군이 후방에서 고경명 군을 공격하니, 앞뒤로 적을 대항해 싸우게 된 고경명군은 후방의 왜군을 쫓아 눈벌에서 왜군에 포위당하고, 전군이 순절하였다. 고경명 군의 거병 보고를 들은 선조는 공조 참의라는 관직을 하사하고 초토사라는 겸관을 전지하였으며, 순절한 소식을 듣고 애통하게 생각하여 사우를 광주에 세워 액호를 포충사라 하고 배향케한 다음 금산의 종용사에도 배향케하여 그 충의를 기억하도록 했다. 조선 17대 효종 27년에 당시 군수 여필관이 순절비를 세운 것을 일제 때 없애 버렸으나, 해방 후 후손들이 다시 세우고 1964년 비각을 건립했다.
전통적인 한국적인 고풍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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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장군 이치대첩비

이치는 순우리말 '배티재'의 한자 이름이다. 이 배티재는 대둔산 중허리를 넘어 전북 완주군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다. 임진년 7월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군이 군량미의 현지 보급을 위해 이 배티재를 넘어 호남평야로 진출하려 하였다. 이때 왜장 고바야가와가는 2만 병력을 이끌고 재를 넘으려 했다. 한편, 이보다 앞서 권율장군은 동복현감 황진과 1,5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 재를 지켜 왜군의 호남진출을 막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군은 수의 우세함과 승승장구의 힘을 믿고 단숨에 이 재를 넘으려고 공격했지만, 장군은 전병력을 독려, 결사전을 벌여서 적을 섬멸하여 승리를 거두니, 이를 일컬어 이치대첩이라 하고, 이후 왜군의 호남 진출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1866년 금성면(錦城面) 상가리(上佳里)에 이치대첩비와 대첩사 (大捷祠)를 세웠으나 1944년 6월 일제가 항일유적 말살정책으로 폭파하여 그 파편이 진산면 사무소에 보관되었다. 1963년 대첩에 참여한 후손과 지역 유지가 지금의 장소에 비석을 건립하였다. 1991년부터 성역화계획이 수립되어 사당·비각 및 안내판 이축, 내삼문·외삼문·담장을 건립하였다. 장군의 묘소(경기기념물 제2호)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長興面) 석현리(石峴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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