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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내장산국립공원의 품안에 안겨 있는 내장사는 백제 무왕37년(636년)에 영은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한때는 50여동의 대가람이 들어섰던 때도 있었지만, 정유재란과 6.25때 모두 소실되고 지금의 절은 대부분 그 후에 중건된 것이다.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절이다. 내장산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가운데에 자리잡아 주변경치가 매우 아름다우며, 특히 가을철 단풍이 들 무렵의 절 주변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백양사, 방장산, 장성호, 담양호 등이 주변에 있고 주요문화재로는 내장사 이조등종이 보존되어 있다.[내장사조선동종]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1974년 09월 27일 지정)내장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동종으로 고려 후기 동종에서 보이는 일반적 양식을 갖추고 있다. 내장사가 중건된 후 전라남도 보림사(寶林寺)에서 옮겨온 것이다. 일제 말기에는 놋쇠 공출을 피하여 원적암(圓寂庵)에 감추었고, 한국전쟁 중에는 정읍시내 포교당에 피난시켜 보전을 꾀하였다. 높이 80㎝, 종신길이 60㎝, 구경 50㎝의 소형이나 명문(銘文)이 확실한 조선 후기 범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전북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 모양은 마치 김치독을 엎어놓은 것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배부분[鐘腹]과 견대(肩帶), 구연대(口緣帶)도 확연하며, 문양대에도 4개의 유곽(乳廓)을 배치하였다.* 배부분에 비천상(飛天像) 대신 보살상을 양각 *종정(鐘頂)에는 네 발로 천판(天板)을 딛고 용틀임하듯 구부린 용으로 용뉴를 만든 것이나 그 옆으로 음관을 낸 것도 격식대로이다. 다만 배부분에 비천상(飛天像) 대신 보살상을 양각한 것이 다를 뿐이다. 견대(肩帶)는 두 줄의 띠로 구분하여, 윗띠에는 당초문(唐草紋)을, 아랫띠에는 윗띠의 돌출 부분을 따라 여의두문(如意頭紋)을 배열하였다. 견대 밑에는 24개의 작은 원 문양을 돌리고, 그 안에 범자(梵字)를 양각하였다.* 영조4년에 주조된 동종 *유곽은 각각 당초문을 새긴 사각 띠로 둘러싸고, 그 안에 3단 3열의 종유(鐘乳)가 정연히 배열되어 있다. 각 종유 주위는 둥근 연화문(蓮花文)이 받치고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2구의 보살입상을 배치하고, 그 아래 둥근 모양의 꽃무늬 당좌(撞座)가 2개 있다. 당좌 사이에 "乾隆三十三年戊子十月施主趙漢寶全南長興步林寺鑄成(건륭33년 무자10월 시주조한보 전남장흥보림사주성) 云云"하는 종기(鍾記)가 있다. 조한보가 부친의 복을 빌기 위하여 조성하였다는 내용이다. 건륭 33년은 조선 영조 4년(1768)으로, 이 종이 주조된 해를 말해 준다.
더보기이곳은 40대, 30대 방문이 많고 방문객들은 주로 백양사, 내장산 워터파크에 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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